뒤통수를 치는 심리 스릴러, 『홍학의 자리』 리뷰

『홍학의 자리』는 학교라는 폐쇄적 공간을 배경으로 불륜, 괴롭힘, 복수, 그리고 자살이라는 복잡한 인간 심리를 파고드는 스릴러 소설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소녀의 죽음 이면에 숨겨진 반전과 심리적 긴장감은 독자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홍학의 자리


“예측 가능한 추리 속, 예측 불가능한 진실”

『홍학의 자리』는 고등학생 다연과 교사 준우의 불륜으로 시작된다. 장소는 하필이면 학교. 이 금기된 관계의 발각을 피하려다 벌어진 참극은 독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준우가 다연을 남겨두고 경비원을 따돌리려 한 사이, 다연은 교실에서 칼에 찔린 채 천장에 매달린 상태로 발견된다. 이 사건의 첫 번째 충격은 “누가 다연을 죽였는가?”라는 질문이 아닌, “왜 그날, 그렇게 죽었는가?”에 있다. 추리는 치밀하게 펼쳐진다. 준우, 경비원 황건중, 다연의 친구 은성, 그리고 은성의 어머니 조미란까지. 이름이 밝혀지는 인물은 모두 의심의 대상이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사기 피해자들과 그 중심에 선 다연의 어머니―는 이 소설의 핵심 테마인 ‘신뢰와 배신’을 더욱 깊이 파고든다. 소설은 단순히 ‘범인을 찾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 간의 관계, 특히 다연과 은성, 다연과 준우, 그리고 조미란과 은성 사이의 복잡하고 무거운 감정선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 상실, 죄책감이 교차하며 치밀한 심리극으로 진화한다. 독자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된다.

“엄마와 아들, 파국의 공모”

이 소설에서 가장 입체적인 관계는 은성과 그의 어머니 조미란이다. 조미란은 같은 학교 교사로, 준우의 동료다. 그녀는 모범생 아들 은성을 끝까지 믿고 싶지만,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은성의 추악한 민낯은 그녀를 무너뜨린다. 다연을 괴롭히고 그녀의 지원금을 빼앗았다는 사실은 조미란이 알고 있던 '완벽한 아들'의 환상을 깨뜨린다. 은성의 범행을 부정하면서도 결국 아들을 보호하려 하는 조미란의 선택은 모성애와 죄의식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다. 그녀는 범행 은폐를 위해 스스로 나서며, 진실보다 아들의 미래를 지키려 한다. 하지만 이 행위는 오히려 아들을 또 다른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홍학의 자리』는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고통스럽게 보여준다. 특히 조미란의 선택은 독자에게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언제까지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독자를 도덕적 딜레마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홍학,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비극의 상징”

소설의 제목이자 작품 전체의 키워드인 ‘홍학’은 다연의 삶과 죽음을 은유한다. 홍학은 수컷끼리 짝을 이루고, 다른 암컷의 알을 훔쳐서 함께 새끼를 키우는 독특한 습성을 가진다. 다연은 이 홍학처럼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관계, 즉 준우와의 불륜이라는 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꿈꾸었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이었다. 준우는 다연에게 도피처이자 구원이었지만, 그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다연을 외면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모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준우에게는 가족도, 사랑도, 책임도 중요하지 않다. 다연이 홍학을 언급하며 네덜란드로 가고 싶다고 말한 장면은 이 상징성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낸다. 네덜란드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 다연의 바람은 사회적으로 용인받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진짜 가족’을 이루고자 했던 절박한 욕망의 표현이었다. 결국 다연의 죽음은 자살이었다. 하지만 그 죽음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와 관계 속에서 몰린 ‘구조적 자살’에 가까웠다. 모든 도피처가 무너지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다연은 칼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홍학의 자리』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통렬한 질문을 던지는 사회비평서에 가깝다.

“반전보다 깊은 감정의 파장”

『홍학의 자리』는 단순한 ‘범인 찾기’ 소설이 아니다. 인간 내면의 어두움과 무너진 관계 속에서의 절망, 그리고 그 절망이 어떻게 죽음으로 연결되는지를 그린 섬세한 심리극이다. 이야기의 반전은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다연이라는 인물의 상실감과 고립이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절박함을 얼마나 쉽게 외면하고 있는가?” 어른의 책임, 친구의 책임, 가족의 책임이 모두 무너진 자리에서, 한 아이가 스스로를 지워야 했던 이유. 그것이 이 소설이 던지는 가장 무거운 메시지일 것이다. 『홍학의 자리』는 쉽게 읽히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작품이다. 심리적 반전과 복선, 상징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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